거인의 노트 서평
나는 평소에 기록에 관심이 많았고, 이 책을 기록학 박사님이 쓰셨다고 해서 읽게 됐다. 내가 생각한 이 책의 핵심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기록이라는 행위의 숨겨진 이득' 과 '어떻게 재미있게 잘 기록할 수 있는지' 이다.
보통 사람들이 갖는 기록이란 개념은 중요한 지식을 추후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 적어두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까먹지 않기 위해 적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기록의 가치이고 그 외에 문제의 복잡함을 해소하는데도 기록을 이용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예시로 수학문제를 풀 때 숫자를 적어가면서 풀면 4자리 수의 곱셈도 쉽게 풀 수 있는 반면 머리로만 풀면 매우 어렵다. 파인만은 '파인만 알고리즘' 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1. 문제를 적고 2. 매우 깊게 생각하고 3. 답을 쓴다는 3단계의 아주 쉬운 알고리즘이다. 그런데 이 행위를 직접 해본 사람은 이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복잡함의 해소를 일상에 적용하여 일상생활의 잡다한 문제를 기록하고 그에 관해 떠올랐던 생각들을 적어보며 나는 실제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기록에는 또 앞서 말한 '기억', '복잡함의 해소' 외에 '내면을 외부세계로 표출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 이라는 장점이 있다. 음악이나 그림보다 훨씬 쉽고 분명하게 내 내면세계를 표출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항상 그대로 베껴쓰는 기록보다는 중간에 내 생각이 들어간 기록을 하라고 강조한다. 잘 작성된 기록은 읽는 사람이 그 당시 저자의 감정까지 깊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 기록을 자주 다시본다면 '훌륭한 피드백의 출처'가 된다. 기록이란 건 사실 한번 적어놓고 다신 안본다면 가치가 매우 저하된다. 그래서 다시 찾아볼만하게 기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기술에 대한 글을 자주 적는데 내가 썼던 글을 1년 뒤, 2년 뒤쯤 보면 그 당시에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캐치할 수 있고, 또 지금의 나는 무엇이 부족할까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선 이렇게 유익한 기록을 재밌게 하기 위해 저자가 구체적으로 기록을 재밌게 하는 몇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첫째로 절대 너무 길게 쓰지 말고 잘쓰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적 부담을 갖는 순간 기록 자체에 소비하는 시간이 너무 커져서 기록이 비효율적이 되며 점점 기록과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기록은 최대한 짧게 핵심만 하자.
둘째로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저자는 만년필의 필기감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좋은 만년필은 서걱서걱대는 필기감이 좋아 기록할 것이 없어도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든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예시도 나온다. 예쁜 다이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훌륭한 위인들이 기록을 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그들을 벤치마킹 하는 전략으로써 기록할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아있을 때 남긴 노트의 양만 1만 4천여 페이지가 된다고 하고, 이순신 장군님은 난중일기에 전쟁과 자신의 히스토리를 아주 세세히 기록했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다.
와이 콤비네이터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도 '글을 써야만 할 수 있는 사고' 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를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을 땐 글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복잡하고 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거의 항상 글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원문) if you need to solve a complicated, ill-defined problem, it will almost always help to write about it. http://www.paulgraham.com/read.html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맞은 도둑력) 서평 및 문장정리 (4) | 2023.06.22 |
---|